쉐마칼럼

2015.06.24 13:41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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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말씀: 마13:53-58

 

13: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13: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13: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꼐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하고

13: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13:58 그들의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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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마학교 학생들이라면 1학년을 제외하고 제인오스틴 원작인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를 읽어 본적이 읽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쉐마학교 2학년 봄학기 필독서입니다. 이 소설은 여주인공인 엘리자벳의 편견의 시각과 남자주인공인 다시의 말투와 행동에 드러난 오만을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먼저 국어사전에 나타난 오만과 편견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만의 뜻은 태도나 행동 따위가 방자하고 거만함, (유사어: 거드름, 거만, 교만)

*방자하다: (사람이나 그 언행이) 어려워하거나 삼가는 태도가 없이 무례하고 건방지다.

 

편견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입니다.

 

*편견과 비슷한 단어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1)지역감정(특정한 지역에 살고 있거나 그 지역 출신이 사람들에게 다른 지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좋지 못한 생각이나 편견),

2)인종차별(인종적 편견에 의해 특정 인종에 대해 사회적, 경제적, 법적 불평등을 강제하는 일),

3)색안경을 끼고 보다(좋지 않은 감정이나 편견을 가지고 대하다), 독단주의(주관적 편견으로 어떤 판단을 주장하거나 긍정하는 경향이 있는 것)

 

엘리자벳은 자신만의 완고한 관점으로 주변 사람들의 꾸밈새, 말의 음색, 행동거지, 음성의 억양, 독특한 태도 등 복합적인 뉘앙스를 종합하여 인물을 판단하는 냉철한 관찰자입니다. 엘리사벳은 가족, 친척과 이웃 사람들을 세심히 관찰하여 인간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확고한 관점인 첫인상, 사교성, 가치관을 기준으로 그것에 맞아 떨어지는 인물은 호감형으로 그에 상반되는 비호감으로 내면에서 분류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매우 주관적이고 거만한 판단이죠. 예를 들어 여러사람에게 친절함과 여유를 보이는 빙리씨는 호감형으로, 그에 비해서 무뚝뚝하고 비사교적인 다시씨는 비호감으로 취급하여 빙리 씨는 무슨 일을 해도 좋게보고, 다시씨는 무슨 일을 해도 나쁘다고 판단합니다.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엘리자베스는 몇 가지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편견이 심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다시의 오만한 말, 그의 한 면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의 또 다른 면인 친절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삶의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선입관과 편견을 걷어내고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다른 사람을 총체적으로 보기 시작했을 때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유서깊은 흑인교회인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지난 617일에 인종차별적인 총격 사건이 발생해서 흑인목사를 포함해서 신자 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용의자인 21세의 딜런 로프는 극한 백인 우월주의자였다고 합니다. 이 사건도 극심한 오만과 편견이 불러낸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또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편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원만한 이해가 없으니까 사물과 사람, 사건을 넓은 시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편견을 갖게 되고, 편견은 또 다른 거만함과 오만함, 방자함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 안에 자신을 가두게 되고, 편협하고 까다롭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향해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게 합니다. 오만하고 편협한 그 태도가 어떤 사람의 외향성과 만나게 되면 타인을 향해 말과 행동을 거침없이 하게 해서 그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 입힐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이 도리어 예수님을 메시야인 예수님으로 보지 못하고, 믿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성장배경에 집착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목수의 가정, 왜소한 예수님의 외모...예수님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과 이해가 예수님을 향한 선입관과 편견을 만들어내었고, 이것은 오히려 가장 많은 은혜를 받을 수도 있었던 나사렛 사람들로 하여금 순수하게 예수님을 순수하게 믿고 배우는 삶에서 외면시켰습니다. 배움과 은혜의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오만과 편견 때문에 예수님이 어떤 기적을 행해도, 예수님이 어떤 가르침을 주어도 그것이 그들의 마음 안에 자리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아니 이 사람의 이 지혜와 능력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지? 아니 믿을 수 없어, 인정할 수 없어, 이 사람은 천한 직업을 가진 목수의 아들이잖아. 이 사람의 엄마는 마리아고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잖아. 그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고, 그들은 뭐 대단한 것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데... 우리는 그들을 너무 잘 알아. 우리와 별반 차이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저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가 들을 필요가 있을까? 별 볼일 없을거야. 돈도 없고, 학벌도 좋지 않고, 신분도 낮은 저 사람이 우리를 가르칠 수는 없는거야

그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회당은 호기심에 기웃거렸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 들어가서 마리아처럼 말씀을 사모하므로 경청하는 은혜를 누리기 어려웠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편견 때문에 예수님을 진실로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저나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갇혀서 특히 다른 사람들을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의 선호가 뚜렷해서 사람들을 걷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잘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교만한 태도에서 나옵니다.

내가 너를 너무 잘 안다. ~ 해서 나는 네가 좋아, ~해서 나는 네가 싫어.”

우리나라의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의 지역감정, 인종차별..과 같은 것이 모두 편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상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지요. 자신이 갖고 있는 기존의 생각 때문에 늘 제한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균형잡힌 생각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만한 사람이 되기 쉽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품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한번 잘못 보면 끝까지 잘못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한들, 무슨 행동을 한들 그 사람을 인정해줄 수 없습니다. 그냥 싫지요. 상대하기 싫은 마음이 듭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이런 부분을 버리지 않는다면,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골고루 쓰임받기 어렵습니다. 나의 이러한 편협한 태도가 내가 쓰임 받는 일에 제한을 줍니다. 싫다 좋다가 너무 뚜렷해지니까 인간관계가 원만해지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평화하게 지내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의견과 방법만을 고집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곳에 오래 계시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들과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삶을 나누는 일은 어려웠던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오만과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어떤 사람을 볼 때,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창조와 타락과 구속의 관점으로, 예수님의 시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 저 친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이다.

, 그렇지만 저 친구도 한계가 있는 사람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저 친구의 어떠한 부족함도 내가 포용할 수 있어야겠다.

, 저 사람을 위해서도 주님께서 죽으셨다. 나만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은 존귀한 사람이다.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다. 저 사람의 어떤 실수도 받아줄 수 있어야겠다. 이것은 바로 다른 사람을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관점, 내가 섬겨야할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둘째, 나의 오만과 편견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자신의 변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절실한 문제가 생겨야 기도하게 됩니다. 살만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불신앙입니다. 자신의 부족을 절감하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나의 한계를 느꼈을 때 새벽기도, 철야기도, 심야기도시간을 갖게 되고 여기저기 기도부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변화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절실한 마음을 품고 기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성품의 변화, 학업의 발전,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셋째,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열고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먼저 다가가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맞는 사람과만 상대하며 평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같은 가족 안에서도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고, 같은 교회 안에서도, 같은 학교 안에서도, 혹은 같은 직장 안에서도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융화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마음을 꽉 닫고 배려하지 않고 만나는 사람마다 판단하고 비판하며 살아간다면 그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재미없고 힘들겠습니까? 반면에 사람을 향해 내가 먼저 마음 문을 열고 먼저 인사하고 먼저 미소 짓고, 먼저 말을 걸고 다가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의 작은 실수부터 용납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자유하고 행복하고, 발걸음도 가볍겠습니까?

 

우리는 매우 작은 학교입니다. 우리 안에는 매우 적은 수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중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다릅니다. 우리고 우리는 다 미완성작품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인생이 모여 있습니다. 이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도 있고, 내가 싫어하는 성향의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내가 적은 숫자의 사람들과 어울리더라도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잘 들어주고, 내 방식을 고집하기 보다는 그들의 방식을 따라주는 것...이것이 진정한 성장입니다. 또한 과거에 그 사람이 어떠한 실수와 잘못을 했었더라도 현재 그 사람의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것이 좋은 성품이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그 상황에서 왜 그런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려하면 할수록 원만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성품입니다. 겸손한 마음 안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이 글로벌한 인재입니까? 영어를 잘하고 재능이 많은 사람이 글로벌한 것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 마음 문을 활짝 열고 먼저 다가가 섬기고 배려하고 돕는 그 사람이 바로 글로벌한 사람입니다. 외국여행을 많이 다니고 해외유학을 한다고 해서 글로벌한 인재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로벌한 인격과 매너를 갖추었을 때 글로벌해지는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그 한 사람도, 작은 그룹도 품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소양을 좀 더 닦아야합니다.

내 방식, 내 스타일만 고집하지 말고, 저 사람 편에서 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먼저 해줄 줄 알고, 편안하게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쉐마인,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 것, 내 방식을 접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도 얻을 수 있고, 좋은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전도와 선교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만 기독교세계관 월드크리스천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관계, 우리의 말투, 우리의 행동, 우리의 모든 것이 기독교세계관으로 점진적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행동하는 것을 날마다 연습하고 있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저희가 모두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인 것을 잘 압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 우리는 오만과 편견의 시야에서 스스로 쉽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주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난 주에 코람데오의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자고 했습니다. 정말 그런 저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를, 가족을 주님의 마음과 사랑으로 수용하고,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어느 곳에서나 어떤 사람들이나 포용하고 배려할 수 있어서 주님의 빛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저희 쉐마학교가 바로 그것을 훈련받고 연습하는 장소가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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