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처지의 비참함
(사람이 그 타락한 처지에서 비참한 것은 무엇입니까?)
19문: 사람이 그 타락한 처지에서 비참한 것은 무엇입니까? 답: 모든 인류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온갖 비참함을 겪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고 영원히 지옥의 고통에 떨어집니다. | 1.사람은 왜 비참함에 처하게 되었나요? 2.사람들은 정말 비참한가요? 3.비참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4.비참한 삶의 모습의 예를 들어보세요. 5.인류가 타락 전에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였나요? 6.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아래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7.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겪는 온갖 비참한 삶은 어떤 삶인가요? 8.죽음의 개념은 무엇인가요? 9.영원한 지옥의 고통은 어떤 고통인가요? |
Q. 19. What is the misery of that estate whereinto man fell?
A. All mankind by their fall lost communion with God, are under his wrath and curse, and so made liable to all miseries in this life, to death itself, and to the pains of hell forever.
엡2:12 그러나 하나님 없이 살았던 지난날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자손도 아니며 그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의 기업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모르는 자들이지 않았습니까?
요3:36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생이 있지만, 아들을 거역하는 사람은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그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다.”
전2:22-2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며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17문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인류는 죄와 비참의 처지에 떨어졌습니다.
18문 사람이 타락해서 짓는 죄로 인해 사람은 원죄를 짓게 되었는데, 원죄의 정체는 아담의 죄책을 지게 됨, 원시의를 잃음, 성품이 부패하였음을 말합니다. 또한 이 원죄로 인해서 사람은 모든 자범죄를 짓게 됩니다.
19문에서는 사람들이 타락으로 인해 당하게 된 비참함의 적나라한 모습은 무엇인가? 입니다.
교장선생님과 저는 지난 개천절에 강화도에 들렀다가 평화 전망대를 방문했습니다. 임진강, 예성강, 한강이 한 자리에서 만나며, 북한땅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는 약 1.8km 되어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북한이 위치한 전망대라고 합니다. 그날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전망대에서 고려 산으로 막혀서 직접 볼수 없었지만, 고려시대의 도읍지였던 송악산 일대와 산너머 개성공단의 위치도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전시장에 들려서 6.25 한국전쟁의 참상을 담은 사진들과 역사적인 영상을 보면서 당시 3년간 전쟁을 겪으며 역사상 가장 많은 민간인의 희생자를 낸 우리 민족의 비참한 모습을 한 눈에 보면서 가슴이 저며왔습니다. 반면에 망원경으로도 볼수 있었던 북한 동포와 북한 땅의 모습은 통일이 멀지 않았음을 절감하게 했습니다.
비참(悲慘)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더 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하다’고 나와 있는데, 여러분은 자신이 비참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동의하지 못할 것입니다. 흔히들 배가 부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면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가난하고, 병들고, 힘이 없으면 비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눈에 띄게 비참해져야 우리는 비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중에 누가 비참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중에서 하루에 한 두 끼라도 굶는 사람이 있습니까? 고치지 못할 병이 들어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여기 부모가 없는 고아 있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중에 비참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과 제가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한 것은 우리의 본질적인 상태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오늘 교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타락하여 범죄 했을 때,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제부터 사람이 당하게 된 비참함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살펴보려합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기 때문에 비참함에 처하게 되었다.
창3:8 그 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때는 하루 중 서늘한 때였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는 여호와 하나님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창3:9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창3:10 아담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지만 벌거벗었기 때문에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창3:23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의 아내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온 근원인 땅을 열심히 갈게 하셨습니다.
창3:24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쫓아 내신 뒤에 에덴 동산 동쪽에 천사들을 세우시고 사방을 돌며 칼날같이 타오르는 불꽃을 두시고,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고, 하나님의 땅으로부터 쫒겨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가까이 대면해서 웃고 떠들며 대화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리낌이 생겼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에는 하나님이 부담스러워진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로 오염된 인간사이에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관계를 화목케 하시기까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다 못박으시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다리를 놓아주시기 전까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엡2:12 그러나 하나님 없이 살았던 지난날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자손도 아니며 그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의 기업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모르는 자들이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비참함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벅찬 삶인지...마치 고아와 같은 삶입니다. 여러분이 부모님 없이 살아간다고 생각합시다. 먹고, 자고 공부하는 일에 금방 브레이크가 걸릴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삶은 꿈에도 기대할 수 없겠지요? 여러분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고아원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이 부모없이 정부의 보조를 받아서 살고 있지만, 그들은 정서적으로도 그 누구로부터 위로와 돌봄을 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소외되어 매우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자신을 지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이 부모님께 투정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 배부른 소리입니다. 부모가 없다는 그 자체가 비참함인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되고 방치된 고아처럼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우리에게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교제단절이 주는 4가지 의미(우리가 왜 비참한 것인가?)
1)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아래 있기 때문에 비참합니다.
엡2:3 우리 모두 저들과 똑같이 죄된 본성을 좇아 행하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온갖 일을 저질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분노를 사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생이 있지만, 아들을 거역하는 사람은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그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못마땅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이기보다는 자신들의 만족만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살아가니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유치하고 한심하겠습니까?
죽어라 말 안 들으면 더 이상 말해주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견하는 것을 싫어하니까...결국 방치되는 것입니다. 충고를 듣고 따라야 도와주고 싶은거죠. 듣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는 겁니다. 자세와 태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배울 마음도 변화될 마음도 없기 때문에...하나님이 더 이상 우리 삶에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비참함입니다.
2)사람은 이 세상에서 온갖 비참함을 겪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비참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었던 온갖 비참한 모습은 역사를 배우다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 역사는 앞으로 우리 인간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우리 인생이 평생토록 탄탄대로하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부자라고 죽을 병에 걸리지 않습니까? 삼성의 이건희씨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재 박대통령의 위치가 부럽습니까? 그분의 인생을 보면 비참합니다. 엄마, 아빠가 모두 타살되었습니다. 20대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지금 50대로 살아가기까지 지나온 30여년 동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겠습니까? 그 어느누구도 세상을 살면서 비참함을 겪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비참하게 된 것은 우리 삶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모든 비참함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전2:22-2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며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3)사람은 결국 죽기 때문에 비참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죽음을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천국에 간 두사람을 언급합니다. 누구죠?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이 정말 고통스럽다고...저는 엄마가 임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숨이 가쁩니다. 호흡을 힘겹게 합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순간, 산소가 우리 안에 잘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뇌 활동이 부진해지고, 결국 정신이 흐릿해집니다. 마침내 심장박동이 멈춥니다. 온몸에 힘이 풀립니다. 얼굴이 하애집니다.
뇌파 그래프가 마침내 일직선을 그립니다.
우리의 육신이 죽는 것은 사람의 타락과 죄의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롬 5:12 <아담과 그리스도>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를 통해 사망이 들어온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4)사람은 결국 영원한 지옥의 고통에 떨어지므로 비참합니다.
마25:41-46 그리고 나서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해 준비한 영원한 불에 들어가거라. 42 내가 배가 고플 때, 너희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내가 목마를 때, 너희는 마실 것도 주지 않았다. 43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초대하지 않았다. 내가 헐벗었을 때, 너희는 내게 아무것도 입혀 주지 않았다. 내가 아플 때나 감옥에 있을 때, 너희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44 그 때, 그 사람들이 대답할 것이다. ‘주님, 언제 주님이 배고프거나, 목마르거나, 나그네 되었거나, 헐벗었거나, 아프거나, 감옥에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돌보지 않았습니까?’ 45 그 때,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이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46 이 사람들은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것이다.”
살후 1:8-9
8 그분은 하늘의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9 그들은 영원히 멸망해서 주님과 가까이 있을 수도 없고, 그분의 크신 영광을 볼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막9:48-49 지옥에서는 벌레도 죽지 않으며, 불이 꺼지지도 않는다. 49 모든 사람이 소금 절이듯 불로 절여질 것이다.
지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옥에서의 고통은 잠깐이 아닙니다. 영원한 고통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이 타락한 상태에서 비참한 이유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기 때문에 비참해진 인간은 사람이 진노와 저주 아래서 놓이는 비참함을 겪게 되고, 사는 동안에도 비참함을 면하지 못하다가, 결국 죽음의 비참함, 그리고 영원한 지옥의 고통 속에서 비참함을 겪게 합니다.
그럼 이 비참함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요? 다음 20문에 길이 보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버려두신 분이 아닙니다. 결국 놀라운 계획 중에 우리를 비참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줍니다.
여러분과 제가 모두 비참함에 처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작점입니다. 여기에는 자존심도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 제가 저의 죄 때문에 비참함에 처해있습니다. 나의 교만함이 저로 그 비참함을 인정치 않게 하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꼿꼿하게 고개를 숙이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제가 저의 비참을 인정하고 주님의 그늘 안에 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잘 배우겠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하고 당신과 동행하기를 기도합니다. 도와주세요,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