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의 모임이라곤 고등학교 동창모임밖에 없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그 동창모임이 반갑지 않아졌다. 모임에 나가서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았다 들어오기 일쑤였고, 귀가 후에도 마음이 계속 불편하였다. 동창들과 만나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자녀교육에 관한 것인데,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도통 없어 보였다. 그 이유를 기독학부모교실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바로 친구들과 나는 인간과 지식을 보는 세계관이 달랐던 것이다.
그렇다. 자녀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피조물이며, 쌍둥이라도 각각은 독특한 존재로 지음받았다. 또, 자녀는 죄로 인해 타락한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회복 가능한 존재이다. 나는 이 기독교의 진리를 믿기에 비록 많은 부분이 부족하지만, 자녀들과 학업, 학교생활을 기독교적인 시계관으로 보려고 했다. 그런데 동창모임의 친구들은 비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자녀와 학업, 학교생활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서 바로 충돌이 있었던 것이고, 그래 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친구들이 모이면 언제부터인가 자녀가 공부 꽤나 한다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어떤 학원이 좋고 학교에서는 어떤 활동을 해야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등 마치 무용담처럼 목에 힘을 주고 이야기 하는 친구들을 본다. 이 친구들의 말 속엔 내 자녀를 텅 빈 항아리나 혹은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로 보는 주입으로서의 교육관, 혹은 자녀를 진흙이나 동물 길들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보는 주형으로서의 교육관, “아는 것이 힘이다”는 지식관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좀 보이는 것 같다. 이것이 사람의 생과 말, 행동을 주관하는 세계관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자녀교육의 영역에 존재하는 너무나도 기세등등한 비기독교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세계관을 똑바로 직시하고,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녀교육에 관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잘 지켜나가리라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