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름 학기 마지막 영성 수업시간 이었습니다.
시험에 출제되었던 성경암송 및 명언을 학생들과 복습하는 시간을 갖고, 나머지 시간을 아래 글을 함께 읽었습니다.
읽고서 각자 핵심 단어와 핵심 문장을 선별하게 한 뒤에 한명씩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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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시는 며칠 동안 병원 복도에 꽂혀있는 얇은 책 두어 권을 가져다 읽었다.
거기서 읽은 짧은 글들 중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글이 하나 있다. 강아지를 팔러 나온 어떤 사람의 이야기다.
'시장에 강아지 몇 마리를 가지고 나와 앉아 있는데 남자아이가 다가와 강아지를 사겠다고 했다.
그 아이는 강아지값을 물어보곤 제가 가지고 있는 돈과 견주어보기도 하고 여러 마리를 살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다가 그중 한 마리를 사겠다고 했다.
그 아이가 사겠다고 하는 강아지는 다리 하나를 못쓰는 강아지였다.
강아지 주인은 그 아이에게 이 강아지는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니 이왕이면 다른 강아지를 사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굳이 한쪽 다리를 못 쓰는 강아지를 사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강아지 주인은 할 수 없이 한 쪽 다리가 불구인 강아지를 그 아이에게 팔았다.
아주 좋아라 하며 강아지를 품에 안고 일어서서 걸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강아지 주인은 가슴을 찡하게 때리는 장면을 발견하였다.
그 아이 역시 한쪽 다리가 온전치 못한 아이였던 것이다.
한쪽 다리가 불구인 강아지를 안고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한 소년의 모습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년은 왜 불구인 강아지를 굳이 사려고 했을까?'
'동정심 때문이었을까?'
'가엾어 보여서였을까?'
'동병상련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 중 어느 하나일 수도 있고 그런 마음 전부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그 강아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의 마음이 컸을 꺼라고 생각한다.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강아지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불편하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그러나 서로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런 것을 소년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해주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편견에 시달려야 하는지 소년은 알고 있었으리라.
사람들의 잘못된 선입관이 다리 한쪽이 불편한 것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소년은 알고 있었으리라.
다른 사람에게 팔려갔으면 천덕꾸러기였을 강아지는 그 소년을 만남으로 해서 얼마나 행복했을까.
연민이나 값싼 동정이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이해와 사랑 그런 것이 소년과 강아지 사이에 오갔으리라
더할 수 없이 귀한 만남으로 더할 수 없이 따스한 마음이 둘 사이에 오고 갔을 것이다.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은 고생을 알고 가난을 알고 삶의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자기의 아픔 때문에 눈물 흘려본 사람은 남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줄 줄도 안다.
많이 알고 많이 가진 사람이 큰 사람이 아니다.
내가 겪었던 고통으로 남이 겪는 고통을 아는 사람, 내가 아파보았기 때문에 남의 아픔을 나누어 가지려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도종환<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