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통신문

2008.05.09 08:58

시간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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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제학 - 총명탕 이야기

필자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많은 경우 너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평상의 일도 있고 업무가 끝난 후에도 잔업이나 회식이나 모임 같은 일이 남아있으며 주말에도 사람들과 할 일이 남아있다.

어른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매우 바쁘다. 요즘은 학원버스들이 밤늦게까지 원생들을 실어 나른다. 사람들이 하는 일의 효율을 필자가 평가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바쁠 수가 없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기

모두 다 그렇게 바쁘다면, 사람들을 이토록 바쁘게 돌리는 것은 일종의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개인적인 시간은 줄어든다. 쉬지도 못한다. 사람들의 개인적인 시간이 줄어든 사실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낼지는 아직 잘 모른다. 필자 역시 쓸데없어 보이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해, 장기적인 효과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생물학적으로 피로가 몸에 장기적으로 축적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도한 만큼 일을 잘하고 있느냐 하는 비판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의도한 만큼 이라는 것이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있다.

요즘 필자는 몇 가지 일을 만들고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시달리고 있다. 원래의 업무량은 변한 것이 없으나 원맨 또는 2-3명이 참가하는 프로젝트들이 더해졌다.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다. 의욕은 넘친다. 몇개의 토이(TOY) 성향의 오픈소스 프로젝트에도 빠져있고 (앞으로 토이가 중요한 화두가 될 것 같아서 시작한 것들이다.) 예전에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보니 사실은 별로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는 LISP(리스프 처리언어)에도 관심이 있다. 이처럼 과거에 빠져 있었으나 접어놓은 취미들도 가끔씩 마음속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숙제는 더 있다. 이 컬럼을 포함한 글쓰기 숙제들도 있고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 그래서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머릿속의 생각도 복잡하다. 복잡해지면 학습과 생각하는 일에 엇박자가 나곤 한다. 그러면 업무는 압력을 받는다. 사실 필자는 업무와 업무가 아닌 것의 차이도 잘 모른다. 아주 급박하지 않는 한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의 구분도 불분명하다.

조금 더 걱정하는 것은 지적인 생산성이다. 때로는 투입하는 노력이 과다하게 많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필자가 앞에 적은 프로젝트 가운데 일부는 사고력을 훈련하기 위한 토이 프로젝트였는데, 일이 진행되다 보니 사고력을 강화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잡아먹는 존재로 변해 스트레스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당장 필요한 다른 일들도 많은데 어쩐지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들에 의해 존속되는 프로젝트도 있다. 그 의무감의 이유는 잘 모른다. 해야 하는 일과 아닌 일의 차이는 미묘해서 항상 고민하곤 한다.

■머리가 쉬지 못하면, 몸도 못 쉰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요즘은 학습과 생각하는 일이 중요한 업무로 변했다. 한계와 성능이 정해져 있는 머리를 잘 관리하여 어느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머리는 몸의 지배를 받는다. 몸이 정상적이라면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머리가 활동할 수 있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된다. 체력도 마찬가지다. 부족한 경우엔 불필요한 일들을 분명히 잘라내야 한다. 그리고 예측가능한 일들을 잘 배치하여 시간을 잡아먹는 일들이 충돌되지 않도록 배치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면 쓸데없이 버려지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고 다른 일들을 할 여분의 시간이 생긴다. 그러면 책을 보거나 문제를 차분히 살펴볼 여유 같은 것이 생긴다. 그러면 조금 더 업무를 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질리거나 지쳐가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머리가 쉬지 못하니 몸도 쉬지 못하고 그러다보면 지쳐버린다. 일반적으로는 마음이 실제의 일들보다 앞선다. 역설적으로 욕심이 많으면 더 빨리 지친다. 그러면 일이 잘 되지 않는다. 동기가 강하면 일을 추진하는 힘이 증가한다고 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서다보면 일들의 스텝이 꼬인다. 할 수 있는 이상을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힘들어하기도 한다.

■프로젝트 관리자는 팀원의 생산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프로젝트 관리에 있어서도 비슷하다.(프로젝트의 구성원은 한명부터 여러 명이 있을 수 있겠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일정한 기간 동안 일정한 일을 하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경험을 제외한다면 파일과 페이퍼가 남는 무엇이다. 사람들은 프로젝트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지만 몸과 마음을 투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일을 파악하는 시간(학습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며 중요한 노동이다. 콤텐츠를 만드는 것도 노동이다. 많은 콘텐츠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팀원이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때로는 프로젝트의 완성이 팀원이 생각하고 만드는 과정의 부산물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프로젝트라면 팀원들이 공부하고 업그레이드를 일으키는 상황을 기대해야 한다. 그런데 프로젝트의 많은 수는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보통은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지만 기대와 열망은 제한이기도 하다. 분위기에 휩싸여 실행할 수 없는 것을 쉽게 약속해 버리는 것이다. 많은 경우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시간을 초과하고 실패로부터 배우게 된다. 예상하지 않던 일이 일어나 기대하던 것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거나 다른 부산물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스마트하게 진행하기 위한 기대치는 사람들이 지치고 일이 잘 되지 않는 것까지도 고려하게 된다. 진행이 느려져서 기한까지 일을 다 끝내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것으로 봐주는 상황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정서불안에 빠져 완전히 좌초하는 프로젝트보다는 조금 늦지만 제대로 진행하면 마무리를 할 수도 있는 프로젝트가 낫다.

지치고 일이 잘 되지 않는 것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적인 생산을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잘 지쳐버리는 것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해보도록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니 프로젝트의 관리자부터 너무 진지하면 안된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총합 이상을 기대하면 안된다.

팀은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팀원의 생산성이나 생산성이 조직의 생산성을 좌우한다. 그 반대도 있겠지만 개인이 너무 지치면 생각을 하나의 실체로 만드는 일이 무척 어려운 일로 변한다. 손발을 움직여서 일을 하지만 결국은 머리와 지식을 쓰는 일로 먹고사는 팀의 관리에서 스마트(총명)한 개인을 만드는 일은 가장 중요하고 개인으로서도 그렇다. 남들의 기대를 따라가다 보면 충직하게는 보이겠지만 조직도 개인도 손해를 보는 경우도 나타난다. 롱런 하려면 차라리 개인들이 이기적인 편이 유지관리가 쉬울 수도 있다. 롱런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지속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프로젝트 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말을 어렵게 했지만 스마트한 조직은 스마트한 개인들을 필요로 한다.

■총명탕과 개인의 생산성

필자는 얼마 전 동생과 통화하다 총명탕이라는 약에 대해 들었다. 총명탕은 한때 크게 유행했던 한약처방의 이름이다. 이 약을 먹으면 공부 잘 된다고 하여 수험생들과 학부모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요즘도 시험 때가 되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우선 약의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다. 지친 머릿속을 다스리는 총명탕이라는 약이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도 수험생들이나 지친 서생들을 위하여 이런 약이 있었고 한의사들이 처방을 내려 주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의학적 상식을 총동원해도 이런 성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처방이 존재한다. 중국 문헌에도 나오고 동의보감에도 나온다고 한다. 인터넷을 뒤져보고 한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총명탕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이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이 총명탕이라는 것이 만드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 재미있다. 처방이 여러 가지가 있고 고정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원리는 있다. 성분이 통일되지 않았지만 머리를 좋게 한다는 이 약의 원리는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 조금 더 총명해진다는 것이다.

이 처방 은 명나라때의 의원 공정현의 의서 '종행선방'에 청음으로 나온다고 한다. 이 의서의 특징은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두세 가지의 약재로 조성된 간편한 경험적 처방들 위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총명탕 역시 백복신(白茯神), 석창포(石菖蒲), 원지(遠志)라는 3가지 약물로 만든 아주 간결한 처방이었다.

처방 중의 백복신은 심(心)을 보함으로써 놀람•황홀함•성냄등을 진정시켜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석창포는 마음으로 통하는 구멍 심규(心竅) 혹은 심공(心孔)을 열어주고 원지는 마음 구멍에 쌓인 담연(痰涎)을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실제로는 민간에서 구할 수 있는 풀뿌리와 나무뿌리를 고아서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효능에 대해 오랫동안 먹을 경우 하루에 천 마디 말을 암송할 수 있다 풀이해 놓았다고 적어 놓았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약을 달여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머리를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처방으로 접근했다. 그러면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것이다. 원인은 알고 있으니 약은 만들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은 처방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예전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피곤했던 것이다. 머리가 복잡하면 몸도 피곤하며 그 반대도 가능하다.

옛날에도 공부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공부라는 것도 생산성이 필요한 일이며 노동이고 시간에 쫓긴다. 누군가가 이런 약을 주문했고 부탁을 받은 한의는 궁리 끝에 처방을 고안했을 것이다. 발명이 되자 약의 수요는 계속 있었다. 그러니 오랜 세월동안 필요했던 하나의 킬러앱스 같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열심히 복용했을 것이고 요즘도 수험생들이 먹고 있으니 오랜 기간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곧 '생산성 높이는 것'

어쩌면 먹으면서도 총명탕이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총명탕은 일종의 placebo 효과를 갖는 약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박한 수요가 있었으니 총명탕은 계속 필요했다. 따라서 총명탕을 발명한 사람은 아주 총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처방은 애매하지만 원인은 알고 있으니 치료방법의 제공은 여러 가지로 시도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현실은 언제나처럼 몸과 마음을 괴롭혔을 것이다.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스트레스에 둔감했다면 이런 처방은 처음부터 불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이 둔감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했다!

심신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총명하고 생산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과거의 지혜였다. 걱정이나 화를 억제하고 몸을 조금 편하게 만들면 총명해지는 것이니 사실은 맞는 접근법이다. 총명탕을 먹어도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면 효과는 없어지니 몸과 마음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면 안된다.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으니 욕심을 너무 부려도 안된다. 총명탕을 먹고 효능을 내려면 할 수 있을 만큼 일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지만 정말 좋은 아이디어임에는 틀림없다. 좋은 아이디어들은 사실 유용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일종의 신화나 소망적 믿음에 불과하다고 해도 유용할 때가 있다.

필자는 이 아이디어의 개발자에게 무엇인가 배웠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총명탕의 효과와 총명에 대해 이해할 것 같고 머리속이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이 스트레스와 마음속의 조급증과 화를 불러내 조금 게으른 것보다 못한 결과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총명탕의 아이디어 자체가 필자에게는 총명탕인 셈이고, 지적인 생산성을 생각하는 개인인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어진 생산성 관리의 아이디어다. 정작 지친 상태로 이 글을 쓰는 필자부터 시행해야 할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사실 조금 덜 지친 상태라면 더 총명한 글을 썼을 것이다. @

안윤호(아마추어 커널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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